창작 소설: 사진첩 속의 진실

모든 것이 하얀 방에서 시작되었다.

 
그 곳은 창문도, 문도 없는 방이었다. 오직 사방을 에워싼 하얀 벽과 그가 앉아있는 작은 의자, 그리고 그의 손에 쥐어진 낡은 사진첩이 있을 뿐이었다.
 
사진첩을 쳐다보며 그는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오래된 것 같지만 손때가 묻어 있는 사진첩, 어딘가 자신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첩을 열자 첫 번째 사진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은 어느 한적한 도시의 광경이었다. 오래된 거리와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사진 속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분명 그곳에 서 있었다. 그 순간 그가 흥얼거리던 멜로디가 귓가를 맴돌았다. 낯익고, 생생하게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그 음률.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멜로디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순간, 사진 속 공간이 일렁이더니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그는 그 낡은 도시의 거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거리의 모든 것이 선명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사람들, 바람, 심지어 그 거리의 냄새까지. 그는 자신이 사진 속 현실에 들어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흐릿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문득 작은 카페 앞에 서게 되었다. 카페 안쪽에는 자신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혼자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기억의 파편들이 떠올랐다. 여기서 중요한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그 대화를 들으려고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카페 안의 사람들은 그를 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저 흐릿한 이미지들만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무언가 중요했던 대화를 잃어버렸다는 걸 느꼈다. 어떤 남자와 마주 앉아 있었다. 그는 그때 무언가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다. 그 남자의 이름을 떠올리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모든 것은 마치 안개 속에 숨겨져 있었다. 그 순간, 사진첩 속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진이 떠올랐다. 무언가가 그를 이끌고 있었다.

그는 다시 그 하얀 방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자신이 사진첩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두 번째 사진 속에는 한적한 숲 속의 호숫가가 나타났다. 호수 가장자리에는 자신이 앉아있었다. 
 
그 옆에는 누군가가 함께 있었다. 얼굴은 흐릿하게 가려져 있었지만, 그 장소는 그에게 이상하게 낯익었다. 그는 다시 그 사진 속으로 들어갔다.
 

눈을 떴을 때, 그곳은 어두운 밤이었다.

 
달빛이 호수 위로 은은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물살은 잔잔했고, 바람이 부드럽게 불었다. 그는 자신이 그 호숫가에 앉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도 자신은 그저 관찰자였다.
 
호숫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자신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고, 그는 그 대화를 조심스럽게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의도적으로 지워진 것처럼. 그는 그 여자의 말 속에 중요한 단서가 담겨 있다는 걸 느꼈다. 그녀는 무언가를 고백하고 있었고, 그 고백이 사건의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다시 현실이 흔들리며, 그는 다시 사진첩 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더 깊은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사진첩의 세 번째 장을 펼쳤다. 이번에는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오래된 저택이 나타났다. 저택의 외관은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저택 앞에서 서성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다시 한 번 그 익숙한 멜로디를 따라 부르자,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택 안은 매우 화려했지만 동시에 낡은 느낌도 함께 풍겼다. 그는 천천히 저택의 방들을 걸으며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이곳에서 중요한 일이 벌어졌었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의 자신에게, 그리고 이 모든 비극의 시작에 관련되어 있었다. 
 
저택의 큰 홀에서 열린 무도회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그를 중심으로 서서히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지켜보는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들 중 몇몇은 지금의 자신을 이곳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마침내 기억해냈다. 그날 밤, 그 저택에서 벌어진 일이 지금의 자신을 이곳, 정신병원에 가둔 사건의 시작이었다. 권력자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한 인물. 그가 자신을 이곳으로 밀어 넣었다. 
 
모든 것이 그의 손길에 의해 조작되었고, 그는 그것을 깨달았다. 저택에서 일어난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렸고, 그 결과로 자신은 정신병자로 몰려 이 하얀 방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는 사진첩 속을 통해 이 모든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각 사진은 단순한 기억의 파편이 아니라, 그를 이끌어 진실에 도달하게 하는 조각들이었다. 하지만 그 진실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 권력자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고, 그를 정신병자로 몰아 세상에서 지워버리려 했다. 사진첩 속의 순간들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그가 살아남기 위해 풀어야 할 수수께끼였다.

마지막 사진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제 그 권력자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이 그의 눈앞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그 자는 무자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순간, 방의 벽이 다시 흔들렸고, 병원 안의 현실이 그를 덮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이제 진실을 알고 있었다. 비록 그가 여전히 이 하얀 방에 갇혀 있을지라도, 그는 더 이상 혼란 속에 갇혀 있지 않았다. 자신을 얽어맨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밝혀낸 순간, 그는 더 이상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그가 겪은 사건의 조각들이 진실의 전모를 드러냈고, 그 진실이 마침내 그에게 다가왔다.

"이제,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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