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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하얀 방에서 시작되었다. 그 곳은 창문도, 문도 없는 방이었다. 오직 사방을 에워싼 하얀 벽과 그가 앉아있는 작은 의자, 그리고 그의 손에 쥐어진 낡은 사진첩이 있을 뿐이었다. 사진첩을 쳐다보며 그는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오래된 것 같지만 손때가 묻어 있는 사진첩, 어딘가 자신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첩을 열자 첫 번째 사진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은 어느 한적한 도시의 광경이었다. 오래된 거리와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사진 속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분명 그곳에 서 있었다. 그 순간 그가 흥얼거리던 멜로디가 귓가를 맴돌았다. 낯익고, 생생하게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그 음률.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멜로디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순간, 사진 ..
1장: 마른 잎의 흔적나루는 언제나 조용히 숲을 걸었다. 숲은 그의 발밑에서 소리 없이 흔들렸고, 그는 그 움직임을 느끼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의 종족은 태어날 때부터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는 말을 전해 내려왔다. 그것은 곧, 자신의 숙원을 찾아가는 과정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명확히 주어지지 않았다. 나루는 그 숙원을 찾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어릴 때부터 그는 주변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다른 이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소한 것들, 바람이 남긴 흔적, 물결이 부딪치는 소리. 그는 그것들이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조금씩 흔들어 놓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말하곤 했다. "사소한 것들은 큰 의미가 없어."그러나 그 말이 진..
서문: 무너진 제국의 조각들제국은 한때의 영광을 뒤로하고, 이제는 억압과 불의가 지배하는 땅이 되었다. 계급 사회는 철저하게 자리 잡았고, 최하층민들은 끝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둠 속에서도 옛 제국의 이상을 되살리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제국의 재건을 꿈꾸며, 불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 반란을 도모했다. 제1장: 끈질긴 의지의 상징 - 벨라토르의 고문실벨라토르는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반란군의 중심 인물이었다. 1년 넘게 잔혹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그는 결코 동료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의 희망은 점점 더 흐려졌고, 어느 날 고문관의 입을 통해 반란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동료들은 대부분 배반하거나 죽었고, 자신이 죽은 줄 알고 아무도 구..
긴 겨울이 끝나고, 빗줄기가 거세게 내리치던 어느 날이었다. 도시의 구석구석을 흐르는 배수로는 회색빛 물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물결은 시커멓게 탁해져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을 더럽다고 여겨 가까이 가지 않았다. 물속에선 오래된 페인트 조각, 부러진 나뭇가지, 그리고 부유물들이 끊임없이 떠다녔다. 그러나 그 흐름의 한 구석에, 잊혀진 작은 땅덩어리가 있었다. 이 작은 흙덩이는 물길에 휩쓸리며 차가운 바람과 빗속을 떠다녔다. 처음엔 그저 흔한 잔해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흙덩이 속엔 생명이 숨쉬고 있었다. 비가 그치고, 태양이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얼굴을 내밀었을 때, 흙덩이는 우연히도 바위 틈새에 걸리게 되었다. 뿌리 내릴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없었다. 뿌리는 조심스럽게 흙 속을 탐색했..
1. 꿈꾸던 신혼집 은수와 민재는 결혼을 앞두고 설렘과 함께 큰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부동산 시장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으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신혼집을 마련했다. 은수는 은행에서 일하며 안정적인 월급을 받고 있었고, 민재는 중견 기업에서 일하며 무난히 승진 코스를 밟아가고 있었다. 둘의 합산 월급으로는 대출 이자와 원금 상환을 감당하며, 생활비도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의 새 집은 깨끗하고 밝았다. 벽지 냄새가 아직 남아 있는 방,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거실, 그들이 함께 꾸며나갈 공간들은 마치 꿈같았다. 주변 사람들도 축하와 부러움을 보내며, “앞으로 부동산 값이 더 오를 거야, 잘했어!”라고 말했다. 그 말들이 둘의 마음을 더욱 확신하게 했다. 2. 위태로운 균형 ..
옛날 옛적, 풍요로운 숲 속 마을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키우고 있었다. 새는 눈부신 푸른 깃털을 가지고 있었고, 그 깃털은 마치 하늘과 바다를 담은 듯한 색이었다. 새의 노랫소리는 아침 이슬처럼 맑고, 황혼의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마을 사람들은 그 새를 보러 자주 남자의 집을 찾았고, 남자는 새를 가족처럼 아끼며 정성껏 돌보았다.하지만 어느 날, 남자는 피곤에 지쳐 새장 문을 닫지 않은 채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잠들어 있던 사이, 새는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른 아침, 남자는 새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자마자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미친 듯이 마을을 뒤지며 새를 찾아 헤맸다. 마을 사람들도 남자를 도와 새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